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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발해 고조선 알타이
와당 벽화 비문 인장 사료
백암성 - 연주성
연주성
중문: 燕州城
본명: 백암성 白岩城
위치: 요녕성 요양 등탑시 대서요진 성문구촌
중문: 辽宁省 辽阳 灯塔市 西大窑镇 城门口村
규모: 둘레길이 2300m,  해발 196m
유형: 평산성


현의 동남쪽에 있는 관둔촌()의 성문구촌() 북쪽에 위치한다. 이 산성은 동북이 높고 서남이 낮은 독립된 구릉상에 위치하며, 성의 동남쪽 절벽 아래에는 태자하()가 서쪽으로 굽이쳐 흐른다.

성벽은 동·서·북벽은 견고하게 돌로 쌓았으며, 남쪽은 태자하 연안의 험준한 절벽을 이용하여 성벽을 구축하지 않았다. 성벽의 총 길이는 2.2km, 높이 약 10m, 너비 4m 정도로서, 축조방식은 안팎을 모두 돌로 축조한 내외협축()이다.

가장 장엄한 성벽은 서쪽 구릉지대에 축조된 서쪽 성벽인데, 여기에는 70m 간격으로 5개의 치( : 성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가 돌출되어 있다. 치의 크기는 대략 길이 5m, 너비 5.3m 정도이며, 치의 하단부는 커다란 돌을 다듬어 계단식으로 쌓아, 고구려의 전형적인 석축 성벽 축조방식을 보여 준다.

성벽의 안쪽으로도 치와 유사한 구조의 성벽을 오르는 성대()가 축조되어 있다. 성대 역시 70m 간격으로 치와 치 사이에 축조되었다. 북쪽과 동쪽의 성벽은 치가 없으며, 축조방식도 엄중함이 서벽에 비하여 떨어진다. 성벽의 일부분은 명()대에 개축한 흔적이 남아 있다.
또 성안의 동북쪽 가장 높은 구릉 위에는 내성()과 봉화대()가 남아 있는데, 명나라 때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성문은 2곳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서문지가 남아 있으며, 태자하로 통하는 남쪽에 정문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마을이 들어서서 파괴되었고, 단지 성문의 기초석만 확인된다. 성안은 완만한 경사면에 계단상의 대지가 펼쳐져 있어 어느 정도의 주거성을 확보하고 있다.

성안에는 연못과 장대() 유적지가 있고, 곳곳에 고구려 후기의 기와편이 흩어져 있어, 그 축조시기가 6세기 이후임을 짐작케 하며, 또 요()·금()의 자기편도 발견되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성은 고구려의 백암성()으로 비정되는데, 《구당서 》 고구려전의 “(백암성은) 산에 의지하여 강가에 임하여 있고, 사면이 모두 험준하다.”라는 기사와, 연주성의 지형조건과 산성의 형세가 일치하고 있다.

축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547년(양원왕 3년) 신성과 함께 개축하였다고 한다. 551년 돌궐이 성을 침공하였으나고구려군은 이에 맞서 1,000여 명의 적군을 물리쳤다고 한다.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성주 손대음()의 항복으로 함락되었다.

발해 때에는 노주()에 소속된 지역이었다. 백암성은 남만주평야의 하천유역에 있다는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고구려 때에 돌궐족의 침입을 여러 번 받은 적이 있다.

백암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백’이 ‘밝다’ㆍ‘크다’는 의미를 가지므로 ‘큰 산’이 된다. 이는 평야지역의 구릉을 배경으로 발달된 지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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