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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산성 |
중문: 虎山山城 |
본명: 박작성 |
위치: 요녕성 단동시 관전현 호산촌
중문: |
규모: 둘레길이 1200m, 해발 146m |
유형: 평산성 |
축조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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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호산산성이 박작성으로 비정된다. 박작성의 축조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구려가 압록강 하구의 서안평현(西安平縣)을 차지한 것은 3세기경이다. 그런데 서안평현성은 현재의 애하첨고성(靉河尖古城)이고, 박작성인 호산산성의 축조는 후대일 것이다. 압록강 하구에 위치하여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길목을 통제하는 요충성이다.
이 성은 애하(靉河)와 압록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돌출된 독립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다. 호산의 북쪽은 명대의 천리 장성이 시작하고 있는데, 호산 정상을 통과하는 장성의 장대 받침은 고구려산성의 성벽을 이용하였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고구려 호산산성은 호산의 남쪽의 사면에 자리잡고 있는데, 아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전모를 알 수 없다. 성 안에는 둘레 4.4m의 우물이 남아 있다. 우물의 석축벽은 모두 잘 다듬은 쐐기꼴 돌을 곧게 올려 쌓았는데 아직까지도 53층이나 남아 있고 깊이가 11.25m나 된다.
648년에 당 태종이 설만철(薛萬徹)과 배행방(裴行方)으로 하여금 군사 3만여 명과 누선 전함을 이끌고 내주(萊州)로부터 바다를 건너와서 공격하였다. 이들은 압록강으로 들어와 박작성 남쪽 40리 되는 곳에 이르러 군영을 쳤다. 박작성주 소부손(所夫孫)은 보병과 기병 1만여 명을 거느리고 막았으나, 배행방의 공격으로 패퇴하였다. 당군이 박작성을 포위하였으나, 지형의 험준함에 의지하고 있으므로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고구려의 장수 고문(高文)은 오골성과 안시성 등 여러 성의 군사 3만여 명을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였는데, 설만철이 군사를 나누어 이에 대응하니, 고구려 군사가 패하여 무너졌다.
현재 호산산성의 북쪽에 중국 명대 천리장성의 동쪽 끝이라는 성벽 일부가 복원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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