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태자하(北太子河)와 대이하(大二河)의 분수령에 가까이 위치한 산성으로, 요동에서 환인(桓仁)으로 들어오는 교통로의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다.
성이 위치한 주봉은 해발 831m이며, 서남쪽은 계곡이 있어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지형으로, 계곡을 감싸고 3개의 봉우리에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석축의 성벽이 축조된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성의 둘레는 1,466m이고 전체적으로 보존이 양호한 상태이다. 그 중에서도 동쪽 성벽이 가장 잘 남아 있는데, 험준한 절벽 위에 성벽을 축조하였다. 성벽의 바깥벽은 높이 3.2m, 안벽 높이 1m 정도이고, 성벽의 너비는 상단부가 2.5m 정도이다.
또 높이 0.6m, 너비 1m, 길이 333m의 여장(女墻)이 설치되어 있다. 북쪽의 성벽도 보존 상태가 좋은데, 안벽의 높이 4.8m, 성벽의 너비는 상단부가 3.2m, 높이 0.4m ,폭 0.6-1m, 길이 369m 정도의 여장이 설치되어 있다.
남벽과 서벽도 대략 높이 2-2.8m, 너비 2.5-3m의 성벽이 축조되었는데, 서벽에서는 아직 여장의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서벽 위에는 돌을 쌓은 위에 30㎝×25㎝, 깊이 50㎝ 크기의 장방형 구멍을 약 2m 간격으로 9개소에 만들었다.
성벽은 잘 가공된 돌을 사용하였는데, 고구려 성벽돌의 전형적인 형태인 사각추 형태로 다듬어서, 아랫단은 크기가 큰 돌을 사용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 돌을 쌓아 고구려인들의 성벽 축조 기술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문지(門址)는 모두 4곳으로, 남벽에 1, 북벽에 2, 동벽에 1곳이 있으며 서벽에는 성문이 없다. 남문은 성의 서쪽 모서리에 위치한 계곡 어귀에 자리잡고 있는데, 성의 가장 낮은 부분에 위치한 중요한 통행문으로 사용되었다.
남문은 너비 4.5m로서 문의 성벽과 초석(礎石)이 남아 있다. 성안에는 1곳의 수원지가 있고, 또 서북 문지 부근에 직경 8.5m의 원형 갱지가 발견되었는데, 군사들의 거주 시설로 추정된다.
성안에서 발견된 유물은 적고 갈색토기·이질(泥質) 회색토기가 출토되었으며, 성 부근에서 철촉과 철모(鐵矛)가 수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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