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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하고분군, 통구고분군 |
중문: 洞沟古墓群 |
본명: |
위치: 길림성 집안시 산성자촌
중문: 吉林省 集安市 山城子村 |
규모: 둘레길이 m, 해발 m |
유형: 적석총 |
축조년대: 고구려 초기~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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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구고분군을 이루는 6대 고분군의 하나이다. 총 1,582기의 고분이 우산북록(禹山北麓)의 환도산성(丸都山城) 남쪽과 통구하(通溝河) 사이에 펼쳐진 평탄한 계곡 위에 무리를 이루고 있다.
고분군을 이루는 고분의 유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크게 이분하여 봉토분류(封土墳類)와 적석분류(積石墳類)로 나눌 수 있는데, 대형의 봉토석실묘 8기를 포함한 봉토분류가 1,052기이며 나머지 530기는 적석분계통이다. 이 고분군에 속한 유명한 고분으로는 절천정총(折天井塚)·귀갑총(龜甲塚)·산성하1411호분 등이 있다.
절천정총(JSM 1298)은 4세기 말∼5세기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935년관야정(關野貞), 매원말치(梅原末治) 등이 절천정총 등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통구』상에 보고했으며, 1966년 통구고분군에 대한 측량조사시 JSM 1298로 번호가 매겨졌다. 그리고 1983년 7월 20일 집안문물보사대가 이 무덤에 대한 재조사를 실시했다. 현재의 상황은 방단(方壇) 중 제1층 방단은 비교적 원상을 잘 유지하고 있으나 2층 방단부터는 훼손이 심하여, 특히 석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방단 부분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현재 연도 입구가 완전히 노출되어 있어 석실 내부가 밖에서 보인다. 밖에서 볼 때 석실 내부에는 파괴되어 무너져 내린 석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재조사시에는 벽화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전한다. 방단계단석실묘로써 평면 정방형을 띠고 있으며, 그 크기는 1층 방단의 길이가 약 20.30m이고, 전체 잔존높이는 약 5m 정도이다. 무덤 축조에 사용된 돌은 모두 다듬질된 장대석(長臺石)의 화강암이다. 현재 3층의 방단이 확인되고 있고 매층의 방단은 위로 올라갈수록 그 폭이 짧아진다. 묘실은 2층 방단 중앙에 만들어 묘실의 낮은 부분과 2층 방단의 상면 부분이 동일한 레벨로 놓여져 있다. 이 묘실이 위치한 제3층 방단은 심하게 무너져 내려 마치 돔과 비슷한 모양으로 원상을 잃고 있다. 내부구조는 연도, 감실, 묘도, 묘실로 구성되어 있다.
귀갑총은 묘실 내에 귀갑무늬가 그려진 벽화분으로 자주 거론되는 고분이다. 귀갑총(龜甲塚: JSM 1304)은 미인총과 같이 1913년관야정(關野貞)에 의해 조사되었으며, 현재에는 유적이 방치되어 연도입구가 노출되어 있고 무덤축조 시 사용되었던 석재들이 무질서하게 봉토상에 널려져 있다. 『집안현문물지』에 의하면 현재 벽화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외형은 봉토무덤이고 묘실은 서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봉토는 절두방추형(截頭方錐形)이고 그 크기는 16m×19m, 높이 5m이다. 내부구조는 연도와 묘실로 구성된 단실(單室)무덤으로, 묘실은 길이 2.69m, 너비 2.75m, 높이 3.17m이고 연도는 길이 1.27m이다. 벽화는 적·흑·색으로 귀갑문양이 그리고 그 안에 연화문양이 배치되어 있다. 또한 운두(雲頭)·대두(大斗)·명두(皿斗) 등으로 된 두공(枓拱)이 그려져 있다.
1983년 정식으로 보고된 산성하 1411(JSM 1411)호분은 세워진 시기는 5세기 중후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산하(禹山下) 1080호분과 함께 묘 위에 세워진 석비(石碑)로 인하여 주목되는 고분이다. 석비는 8각뿔형이며 명문은 발견되지 않았다. 현재 석비는 무덤 기저부의 북편에 절반 정도가 땅에 묻힌 채 서있다. 산성하 1411호분은 외형은 봉토무덤인데 절두방추형을 띠고 있다. 크기는 매변 길이 13.60m, 높이 약 4m이다. 내부구조는 1봉토에 2개의 묘실이 병렬해 있는데, 각각 묘문(墓門)과 연도를 갖추고 있으며 방향은 동쪽으로 치우쳐 있다. 현재 동묘실의 연도는 파괴되어 있다.
산성하고분군은 비교적 다양한 유형의 고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로 보아 초기 적석총이 축조되는 2∼3세기부터 대형 봉토석실묘가 다수 축조되는 6세기에 이르는 오랜 기간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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