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족오 닷컴
고구려 발해 고조선 알타이
와당 벽화 비문 인장 사료
안시성 - 득리사산성
득리사산성, 용담산산성
중문: 得利寺山城,得利营城,龙潭山山城
본명: 역성 力城
위치: 요령성 대련시 와방점시 득리사진 득리사촌
중문: 辽宁省 大连市 瓦房店市 得利寺镇 得利寺村
규모: 둘레길이 2240m,  해발 444m
유형: 포곡식
축조년대: 5세기이후


용담산 산성은 중국요령성 와방점시에서 북쪽으로 대략 20㎞ 떨어진 득리사촌 북쪽의 용담산에 있다. 남쪽으로 득리사진과 약 5㎞ 떨어져 있다. 북쪽으로 와방점고구려 산성과 약 30㎞, 서남쪽 와방점시고려 성산성(城山城)과는 약 20㎞ 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는 남쪽의 비사성(卑沙城)과 북쪽의 건안성(建安城) 사이를 연결하는 주요한 고구려 성이다.

용담산 산성은 전체 둘레가 2.2㎞에 달하는 석축 산성이다. 산성이 소재한 용담산은 남쪽과 북쪽의 두 봉우리가 서로 마주보고 있어 자연 장벽을 이루고 있다. 해발 444m의 북쪽 봉우리와 해발 318m의 비교적 낮은 남쪽 봉우리를 연결하는 산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았다. 산성은 남북으로 길고 동서로 좁은 형태로, 평면 형태는 불규칙한 방형이다.

용담산 산성은 성벽 전체 둘레가 2.2㎞에 달하는 고구려의 포곡식(包谷式) 석축 산성이다. 성 내에 위치한 저수지의 이름을 따서 용담산 산성이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득리사진에 있다고 하여 득리사 산성이라고도 불린다. 동쪽과 서쪽 구간의 성벽이 잘 남아 있다. 주 성문은 동문으로 현재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훼손이 심하다. 서문은 남쪽 봉우리에서 내려온 성벽이 안으로 들어오고 북쪽의 성벽이 바깥으로 에워싸고 있어 반원형의 옹성을 이루고 있다. 서벽과 서문지 일대에서는 서로 다른 방향의 석축렬이 확인되고 있어서, 산성이 한 차례 이상 개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의 성문은 직선형의 어긋문 형태였을 것으로 보이나, 이후 옹성 구조로 개축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용담(龍潭)으로 불리는 대형 저수지는 동문 안쪽에 위치한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고, 돌로 둘레를 쌓았다. 규모는 대략 길이 48m, 너비 20m, 깊이 약 5m 이다. 저수지 부근에는 현재 도교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용담산 산성은 고구려의 적리성(積利城), 또는 석성(石城)으로 비정하는 견해가 있다. 동쪽으로 득리사진의 마권자 산성(馬圈子山城)과 서로 마주보고 있어, 두 산성이 동북부 산지로의 출입을 공제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광개토왕릉비』에 의하면, 영락 5년에 비려(碑麗, 거란)을 격파한 광개토왕의 군대가 회군하여 돌아올 때 지나오게 된 지명 가운데 하나이다. 역성이라는 지명이 『진서(晉書)』지리지에서 요동군의 9개 속현 중에 제일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변경 가까이에 있던 현이었다. 따라서 역성현은 고구려 측에서 보면 요동군 소속의 현 가운데 가장 가까운 현이다. 영락 5년에 비려를 공격했던 고구려군이 양평도를 거쳐 동쪽으로 귀환했다고 하면서 북풍을 그 다음 차례에 기록한 것을 보면 역성은 지금의 집안 서쪽, 혹은 서북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광개토왕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양평도를 거쳐 회군할 때 이 성을 지나쳐 온 것으로 보아 역성은 광개토왕대 이전에 고구려에 의하여 점령된 것을 알 수 있다. 역성은 혼강 동쪽에 있었다.

 




자료 인용시 출처를 밝혀주시면 고맙겟습니다.
위로가기
 링크: 
사이트소개, 연락처
copyright © 2018~ www.3joko.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