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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발해 고조선 알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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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산고분군
칠성산고분군, 통구고분군
중문: 七星山古墓群,洞沟古墓群
본명:
위치: 길림성 집안시 통구촌
중문: 吉林省 集安市 洞沟村
규모: 둘레길이 m,  해발 m
유형: 적석총
축조년대: 고구려 초기 3~4세기


집안 분지에는 모두 6개의 고분군이 설정되어 있는데, 이를 모두 합쳐 통구고분군(洞溝古墓群)이라 한다. 칠성산고분군은 그 가운데 하나로, 노령(老嶺)산맥의 지맥인 칠성산(七星山)의 남쪽 기슭을 중심으로 하나의 고분군을 이루고 있다. 고분군의 분포 범위는 약 1㎢로 다른 고분군에 비하여 넓지 않다. 1966년 조사 당시에는 돌무덤〔石墳〕류 855기, 흙무덤〔土墳〕류 853기 등 총 1,708기의 무덤이 남아 있었다. 다른 고분군과 달리 벽화가 있는 무덤은 보고되지 않았다.

칠성산고분군은 칠성산 기슭을 따라 가족 및 혈족 단위별로 구역화되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한 집단의 무덤은 대개의 경우 산허리에서부터 일렬로 크고 작은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배열되어 있는데, 돌무덤의 경우 이와 같은 경향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이에 비해 흙무덤은 시대적 선후관계에 따른 배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돌무덤 사이의 공간에서 질서 없이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오랜 기간이 흐르면서 축조된 무덤이 증가하여 한 혈족에게 부여된 묘역이 부족하게 된 사정을 반영한다.

이 고분군에서 대표적인 무덤으로는 칠성산 211호분과 871호분을 들 수 있다. 칠성산 211호분은 고분군의 가장 남쪽에 위치하는데, 칠성산 남동쪽 기슭 아래의 충적 대지 위에 조성되어 있다. 국내성 서벽에서 남서쪽으로 약 1㎞ 떨어져 있으며, 무덤 동남쪽으로는 집안-단동 간 도로가 약 100m 떨어져 있다. 무덤은 1966년 길림성박물관과 집안현문물보관소에서 처음으로 실측 조사를 하였으며,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집안현문물보관소에서 몇 차례 더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최근에는 2003년 4월 9일부터 6월 20일까지 집안시문물보관소에 의해 재조사가 이루어졌다.
211호분은 칠성산고분군에서 규모가 가장 큰데, 남쪽 변의 길이 58m, 동쪽 변의 길이는 66m에 이른다. 무덤의 평면 형태는 현재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남아 있지만, 원래는 네모모양의 계단식돌무지무덤〔階段式積石塚〕으로 판단된다. 현재 무덤 가운데에는 북서쪽에서 동남쪽으로 도굴구덩이가 크게 나 있어 돌로 이루어진 봉분이 절반으로 갈라져 있는 것으로 보이며, 널방〔玄室〕은 남아 있지 않다. 무덤의 크기와 형태로 보아 왕릉으로 볼 수 있으며, 축조 시기는 4세기 이전의 것으로 판단된다. 대체로『삼국사기(三國史記)』고구려본기 봉상왕 5년조의 기록을 근거로 고구려 제13대 왕인 서천왕의 능으로 추정하고 있다.

칠성산 871호분은 통구하 서안의 칠성산 남쪽 사면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칠성산고분군의 가운데 지점에 해당한다. 동쪽에 위치한 통구하에서 약 500m 떨어져 있으며, 남쪽에 있는 211호분과는 약 900m 떨어져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조사가 이루어졌다. 1966년 길림성박물관과 집안현문물보관소에서 실측 조사한 적이 있으며, 1980년대에는 집안현문물보관소에서 여러 차례 재조사를 벌여 왕릉급 무덤으로 추정하였다. 1997년에는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와 집안시문물보관소, 최근에는 2003년 5∼7월까지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와 집안시문물보관소에서 다시 이 무덤에 대한 상세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2003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871호분은 계단식돌무지무덤 양식으로서 왕릉으로 판단되고 있다. 무덤의 평면 형태는 네모모양이며, 네 변의 길이는 북변 46m, 동변 48m, 남변 46m, 서변 40m이다. 네 방향에 걸쳐서 계단식담〔階牆〕이 남아 있는데 서쪽은 8단, 북쪽은 10단, 동쪽은 12단까지 남아 있다. 반면 무덤 남쪽은 심하게 파괴되어 단의 수를 파악할 수 없다. 무덤 가운데에는 너비 약 16m의 커다란 구덩이가 남아 있다. 본래 널방이 있었을 자리이지만 가운데 정상부터 남쪽 벽까지 심하게 무너져 내려 원래의 형태와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무덤 북쪽에는 딸린무덤〔陪塚〕또는 제단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확인되었으며, 서쪽에서는 무덤의 담〔垣〕이 남아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무덤의 구조와 출토된 유물을 통해 고구려 초기인 3세기 이전의 고구려 왕릉으로 추정하고 있다.

칠성산고분군은 고구려 초기 고분이라 할 수 있는 돌무지무덤 형식의 변화와 발전모습 그리고 묘역의 구분 등을 밝히는 데에 중요한 기초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칠성산 211호분과 871호분을 통해서 3∼4세기 이전 고구려 왕릉의 존재모습과 배치방식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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